해외영업 / / 2021. 5. 4. 00:26

이직 취업 성공 비결? 취뽀할 때까지 이력서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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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마찬가지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때 취업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취업에 성공할 때까지 계속 이력서를 제출하세요. 언젠가는 취업에 성공합니다.

토익점수도 없던 지방대생의 첫 중소기업 취업

자린고비가 처음 취업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는 2021년 코로나가 휩쓸고 간 지금의 상황과 비견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카드대란이 발생한 직후인 2003년, IMF 경제위기에서 겨우 빠져나왔나 싶었는데 또다시 취업시장이 얼어붙은 상태였습니다. 더군다나 학창 시절 제대로 된 취업을 위한 대비를 하지 않았던 자린고비는 서울의 영세한 IT 업체에 취업하게 됩니다.

카드대란이란 : 신용 카드를 무분별하게 발급하여 신용 카드 회사가 부도를 맞고 신용 불량자가 급증한 현상. 2002년에 소비를 늘려 경기를 활성화하고자 신용 카드 규제를 완화했다가 개인 부채가 급증하여 361만 명이라는 신용불량자를 양성하고 가계와 기업에 심각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최악의 중소기업 문화를 뼈저리게 느끼고 7개월 만에 그나마 다른 중소기업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10명 미만의 직원이 재직 중이었던 IT 기기 유통업이었던지라 직전 회사에 비해 크게 나을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야근이 없다는 정도? 그래도 첫 회사보다는 나은 대표이사님의 마인드와 근무 문화 때문에 재직 중에 뭔가를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고, 뭐가 됐건 간에 자기 계발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마음가짐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하게 되면서 퇴근 후 YBM 강남 어학원에 영어회화 기초반을 등록하게 됩니다.

밑도 끝도 없이 영어공부를 시작하다

영어공부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잡코리아의 이력서를 업데이트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제 이력서를 보고 제조업의 해외영업파트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물론 해외영업직을 수행할만한 역량이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보기 좋게 면접에 탈락했지만 그때부터 해외영업을 한 번 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2005년, YBM 역삼의 Ross Campbell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비즈니스 잉글리시 Intermediate에 등록을 하면서 본격적인 해외영업으로의 경력 전환을 목표로 삼고 자기 계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거의 영어로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이었고, 어휘력도 형편없었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끈기를 앞세워 2년간 매월 학원 등록을 하고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수업에 출석을 합니다. 오죽하면 원어민 선생님이 tenacious(집요한)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저의 성향을 묘사하더군요. 생각해 보면 초급이었던 제가 그때 당시 비즈니스 잉글리시를 2년간 들었던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기본부터 차근차근 익혀 나가야 했었는데 무슨 욕심에서인지 수준에 맞지 않는 과목으로 사실상 월반을 한 거였습니다. 수강생들끼리 조별로 영어토론을 할 때면 항상 말하기에 어려움을 겪었으니까요. 어쨌건 그렇게 2년 24개월간 단 한 번도 Ross 선생님의 수업을 빼먹지 않고 등록하다가, Ross 선생님이 1개월 휴가를 떠나면서 YBM 중급 비즈니스 수업 등록을 멈추게 됩니다. 그리고 비즈니스 잉글리시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지인들과 의기투합하여 오프라인 영어 스터디를 결성하게 되는데, 기억컨대 2006년부터 시작이 되었을 겁니다.

목표는 해외영업, 하지만 계속되는 좌절

처음에는 비즈니스 잉글리시에서 알게 된 지인들로 구성된 멤버들끼리 스터디를 진행하다가 차츰 멤버들이 이탈하게 되면서 해커스에서 스터디 멤버들을 충원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제가 스터디 클럽장이 되었죠. 지금은 접속이 되지 않는 싸이월드 클럽에서 교재를 공유하고 출석체크를 했습니다. 스터디 장소는 YBM 역삼의 빈 강의실을 썼습니다. 저녁때 항상 비는 강의실이 있었고, 아무런 제재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아 매우 유용했습니다. 매주 화 목 저녁 7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커리큘럼은 EBS 라디오의 입이 트이는 영어를 리뷰하거나 해외 기사 등을 읽고 토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스터디를 할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스터디원들이 사전 통보 없이 멤버들이 불참하는 것이었는데 몇 년 하다 보니 미통보 불참은 의례 일어나는 일이어서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한편, 영어공부에 편집증까지 보이던 자린고비는 틈틈이 잡코리아와 사람인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1의 경력도 없으면서 겁도 없이 수많은 중소기업의 해외영업 포지션에 이력서를 제출합니다. 하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광탈을 거듭하게 되지요. 영어라도 좀 잘했으면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여전히 영어실력이 형편없었거든요. 토익도 800을 넘지를 못했죠. 그러던 와중에 또 아침 중국어 어학원까지 등록을 해서 출근 전 중국어학원, 퇴근 후 영어 스터디를 진행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욕심이 좀 과했죠.

가끔 지방에서 올라와 제 자취방에 놀러 온 지인들은 그런 억척스러운 서울생활을 사는 모습을 보고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2008년 무렵에는 토익 점수를 위해 파고다 어학원에 토익반을 접수하게 됩니다. 주경야독에 주말에는 장거리 연애로 따로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그저 학원에서 강사님이 가르쳐주시는 것 만으로 공부를 했고, 토익시험은 거의 매월 쳤습니다. 900점을 목표로 했지만 결국 865점에서 더 이상 오르지 못했네요. 점수가 오를 때마다 이력서에 오른 점수를 새로 업데이트했고 조금씩 오르는 점수에 묘한 쾌감이 일곤 했죠. 파고다에서 정말 열정적으로 우리를 가르치셨던 이현숙 선생님... 보고 싶네요^^

100전 101기, 드디어 해외영업으로 이직 성공

그렇게 성과 없이 해외영업으로의 연이은 이직 실패에 지쳐 가던 어느 날 퇴근길, 우연히 자린고비는 한국무역협회(KITA)가 코엑스 몰 안에 세워 둔 홍보용 입간판을 보게 됩니다. KITA에서 운영하는 무역전문 채용사이트 잡투게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랴부랴 잡투게더에 이력서를 등록했고, 어느 3월 늦겨울, 전 직장의 팀장님께서 저에게 연락을 주셨고, 꿈에 그리던 해외영업 포지션으로 이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5년에 처음 해외영업으로 이직을 꿈꾼 후 5년 만에 목표를 달성하게 되었죠. 재직 중에 이력서는 100통은 썼을 것이고 면접도 10번은 넘게 봤을 겁니다. 뭐 사실 다른 분들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는 인생이지만, 연관 전공도 아니면서 아무런 유관 경력도 없이 업직종을 변경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누구에게나 기회는 있습니다. 취업 성공 비결은 따로 없습니다. 취뽀할 때까지 이력서를 제출하면 결국 이루게 된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취준생분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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